[고양신문] 6주 전에 도착한 메시지를 늦게 봤다. 험한 말이 담긴 메시지가 많아 가끔 확인하는 습관 탓이다. 메시지는 자주 받는 성평등 이야기다. ‘여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차원에서의 해결 방법이 어떤 게 있나요? 할당제밖에 없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당제만으론 부족하다. 할당제는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디딤돌일 뿐이다. 그런데 할당제 자체에 대한 오해가 깊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라디오 방송에서도 할당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 ‘남녀 50% 모든 직업에 할당’ 등이 대표적인 왜곡 발언이다. 윤석열 당선자 역시 여성할당제를 ‘자리 나눠 먹기’로 폄훼하며, 제도 도입 취지 자체를 외면하기 바쁘다.  

할당제는 같은 모양이 아니다. 공기관이나 공기업은 특정 성별이 일정 수준 이상을 차지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일자리에 할당제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혜택은 여성만 받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 임용 등에서 혜택받는 성별은 이미 남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남녀 50% 모든 직업에 할당’, ‘자리 나눠 먹기’ 등은 애초에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할당제 도입 취지를 왜곡하는 말일뿐이다.   

성평등으로 뜨거웠던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성평등을 내건 후보들은 여성할당제를 공약했다. 서울시 공기관 여성 임원 50% 할당이 대표적이다. 모든 일자리가 아닌, 결정권이 있는 자리에 여성할당을 내건 것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비례대표 홀수 번호에 여성 후보를 공천하게 한 것 역시 다양한 법과 제도를 결정하는 자리에 최소한의 여성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위원회에서도 특정 성별이 일정 수준 이상을 차지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결정하는 자리에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핵심은 결정하는 자리에 여성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또, OECD 가입국 중 1위를 기록하는 성별임금격차나 성폭력 등 여성이 경험하는 불평등을 해소할 책임 있는 위치에서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할당제가 있어도 성비 불균형은 여전하다. 성차별을 시정할 책임이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고작 19%, 세계 평균 25.6%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3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공천 할당제를 지역구 의석에도 확대해 특정 성별이 60%를 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이런데도 윤석열 당선자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인수위원회 위원 24명 중 여성은 4명만 임명했고, 할당제 없애는 행보도 시작했다.  

할당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할당제를 디딤돌 삼아 할당제 없이도 모든 직업과 역할, 범죄 등에 성비 불균형과 젠더 불평등이 없는 세상에서 모두 함께 살기 위함이다. 할당제 폐지는 단순히 젠더 갈리치기로 지지를 호소하는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조차 폐지하는 각자도생 사회를 심화시킬 신호다. 할당제에 대한 폄훼와 오해를 걷고 할당제 확대를 요구하는 정치가 더 깊은 평등을 향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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